무위적정(無爲寂靜)의 세계 - 환원과 확산
장준석(미술평론가, 한국미술비평연구소 대표)
용인 양지면의 한적하면서도 조금은 고급스러워 보이는 전원 마을에 작가 차대영의 작업 공간이 있다. 차대영은 미술계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예술인으로서, 변화하지 않는 듯하면서도 마치 거대한 항모가 서서히 움직이듯 변화하면서 끊임없이 그림을 그려왔다. 작가를 오래전부터 애정 어린 눈으로 지켜봐 온 필자는 16년 전에 그의 창작 세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그가 지금까지 추구해온 예술의 세계는 다름 아닌 생명과도 같은 자연의 세계였기에 색을 함부로 칠하거나 지우지 않았다. 모든 것은 번뇌의 경계를 떠난 무위적정(無爲寂靜)과도 같은 혜안으로, 마치 고깔을 쓴 여승이 조심스레 살포시 들어 올린 한쪽 발끝처럼 고요함이 흐르는 정적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당시 작가는 회사후소(繪事後素)를 실천하며 다소곳하게 시공과 조화를 이루는 듯한 담박하면서도 섬세한 모노 계열의 꽃과 연관된 이미지를 동시대적으로 표현하였다. 꽃이라기보다는 현대 단색화 계열의 화면에 꽃의 이미지가 드러난 경우라 할 수 있다. 아무나 그려낼 수 없는 독특한 조형성과 의미를 지닌 다양한 이미지의 꽃의 형상에는 현대적이면서도 한국적인 정서가 내재하였다.
차대영의 창작 세계는 지금도 변함없이 동일 선상에서 묵묵하게 자연과 융화되기도 하고, 때로는 숨결을 고르기도 하며, 때로는 조끔씩 나아가기도 하는 무위적정(無爲寂靜)의 세계라 생각한다. 몇 년 전부터 표현하기 시작한, 산(山)의 이미지를 담은 <The Moment>는 무위적정(無爲寂靜)의 순간을 오롯이 드러내는 적정(寂靜)의 현상이다. 이처럼 항상 변화하며 조화를 이루는 적정(寂靜)의 세계인 그의 예술은 동시대 한국화의 독창적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자연의 근원처럼 환원과 확산이 공존하기에 독특한 아우라가 존재한다. 이는 자연, 특히 산이 지니는 심도 있는 형상에서 투영된 심오한 감성에서 발현한 것으로, 매 순간 번득이는 미적 영감을 필요로 한다. 그 결과는 은근한 은회색, 눈부신 설회색, 영롱한 붉은색, 반짝이는 노란빛 톤 등으로 담담하게 이미지화한 다채로운 산의 형상에서 추출한 자연의 색이 빛과 조응하듯 고요하게 화면에 내려앉은 형국이다. 작가 자신이 “나는 색을 버리고 다시 색을 얻었다.”라고 한 것처럼 말이다. 그가 얻은 또 다른 색은 자연의 색이자 적정(寂靜)으로 이루어진 마음의 색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내면에 겹겹이 잠재한 심층적 감흥을 가감 없이 표출시킴으로써 산에 대한 고정적인 관념이나 조형적 틀에서 벗어나며, 자연에서 비롯된 인간 본연의 감성에 충실하면서도 산의 형상을 통해, 우리 미의식이 고취된 아름다운 색의 본성을 조형적으로 승화시킨다.
작가는 이러한 일련의 현상에 의해 표현된 산의 이미지들을 자연이 주는 또 하나의 소박한 미적 표상이라 여기며, 참된 세계와의 교감을 통해 순간순간 다르게 드러나는 시공간적 현상에 주목한다. 그리고 마치 빛과 기운이 조화를 이루는 듯한 판타지, 천·지·인(天地人)의 하모니를 산의 다채로운 이미지와 숨결을 통해 담아내는 데 주력한다. 색이지만 색을 떠난 투명하고도 신비한 현상은 산과 작가의 조응(照應)을 통해 이루어진 교감이며, 세상을 지탱하는 자연의 본성일 수도 있고, 천·지·인(天地人)의 조화일 수도 있으며, 자연에서 분출되는 환원과 확산, 투명과 불투명의 교차, 무색과 유색의 광합(廣合), 무미소조(無味瀟澡), 담박한 상태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오랜 세월 동안 자연과 색의 신비를 마음에 품고, 이를 감성적으로 표출하고자 최선을 다한 작가의 작품은 큰 산처럼 매우 오묘하며 근원적이다. 근원과 본성을 표현하는 산의 원형질 같은 이미지의 저변에는 인간 자체에서 발산되는 감성적 에너지이자 초인 같은 예술가적 힘이 세계 안의 존재로서 근원적 본능으로 꿈틀거린다.
이처럼 매우 예민한 오감에 의한 감각적 창작과정은 여느 작가에게서는 보기 힘든, 작가 차대영만의 고유영역이라 할 수 있다. 독특한 감성으로 세계 속의 존재자들과 순간적으로 조응하여 소통한 작품에는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는 듯하다. 마치 영롱한 빛이 투영된 듯하면서도 산의 정기가 내려앉은 듯한 적정 상태에서의 환원과 확산의 작용은 예측할 수 없는 이미지를 탄생시키며, 투명과 불투명이 공존하는 환원적 일자(一者)로서의 신비스러움을 함축한다. 투명과 불투명의 환원적 적정(寂靜)은 흑암 속에서 스스로 빛나는 빛과 같은 존재이며, 자연의 신비이자 근원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작가의 예술세계는 근원과 조응하기 위한 일종의 수신(修身) 과정과 같다. 그 결과 다채로운 산의 이미지와 생명성을 담은 담아한 색채와 형체를 자신만의 오감 속에서 조형적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초인적 에너지가 생겼으며, 완성도 미완성도 아닌 산소 같은 투명과 불투명의 환원적 적정(寂靜)이 하나의 화면에 공존하며 조화를 이루게 되었다. 이 조화에 있어서 존재들의 완전한 합일은 불가능하지만, 존재자와 작가는 현존하는 ‘있음’으로 인한 동반자적 관계를 형성하고, 현존하는 ‘있음’ 속에서 항상 상호 응시하며, 현재진행형의 삶 같은 의미를 담아낸다. 작가는 산을 통해, 적정의 세계 모습 그대로를 하나도 놓치지 않으면서도 조형적으로도 산의 근원을 드러내고자 유한한 질료인 물감을 활용하여 구현한다. 하나하나 덧바르고 걷어내며 또 물감을 올리면서 표현해 나가고, 언어적으로도 사유와 소통을 할 수 있는 세계로 만들어 놓는다.
차대영은 이와 같은 과정으로 산을 통해, 존재의 근원을 회화로 구현하는 존재론과 회화가 서로 동형 관계를 이루는 조형에서의 힘을 포착하는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존재론과 회화는 서로 동형 관계를 이루어왔기에, 작가가 산의 본질을 표현하는 데는 형태를 재생산하거나 발명하는 것이 문제인 게 아니라 조형적 힘을 포착하는 것이 문제라 할 수 있다. 어떤 예술도 구상적이지 않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차대영의 예술은 가시적이지 않은 것을 가시적으로 하는 힘이 있다. 작가가 산의 형상을 창조한 까닭은 이처럼 가시적이지 않은 에너지를 가시적으로 함으로써 자신만의 고유한 예술적 과업을 이루기 위해서라 생각한다.
근자에 미국에서 주목받는 이론가인 데이브 히키(Dave Hickey)는 감상자들이 쉽게 보고 느끼며 이해하고 감동할 수 있으면서도 수준이 높은 현대미술을 주장하여 관심을 끌었다. 친숙한 소재를 담은 차대영의 예술작품은 히키의 관점처럼 현대적이면서도 감상자들이 쉽게 이해하고 접근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닌다. 더 나아가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유되는 적정(寂靜)의 에너지로 다양한 기법과 표현성이 한 화면 안에서 융화·흡수되어 작품으로 승화한다. 전통과 현대의 조화와 다양한 조형성의 융화는 작가 차대영의 작품이 지극히 한국적이며 현대적이고 세계적임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