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집된 욕망의 랩소디
고연수 (미술 평론)
어떻게든 억압, 억제하고 가능만하다면 조절하거나 이도 여의치 않으면 화해(?)를 통해 어르고 달래어 여하튼 최대한 자극하지 않고 진정시키려고 하는 것이 우리 안의 욕망이다. 이것은 애초에 부족과 결핍이 낳은, 좀처럼 건강하게 만족 될 수 없다는 전제로 감싸서 감추고 금기시하면서 인간의 본능적 속성으로 치부해왔다.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갖지 못하는 것에 대한 즉 '이미지', '환상', '재현'으로 욕망을 정의한 반면, 들뢰즈Gilles Deleuze는 일단 욕망하는 주체 자체를 부정하면서 모든 생명의 창조적 흐름에는 차이와 흐름을 생산하는 욕망의 흐름만이 있다고 보았다. 식물은 태양을 향하고 벌레는 식물을 향하며 인간은 동․식물을 향하듯. 대상적 세계에서 부재하는 주체에 대해 설정된 욕망이란 것은 없는 것이고, 욕망으로서 생명의 내재면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들뢰즈의 기계적인 욕망은 생산을 창조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흐름이며 접속接續성을 동반한다. 그리고 오로지 그 흐름을 지속-생산-하기 위한 욕망이 있을 뿐이다.
"특정세계를 설정하고 가정하여 만드는 작업을 진행한다. 동․식물의 습식 생활에 맞게 만들어진 수족관처럼 가상의 공간을 구성한다. 인간의 끝없이 펼쳐진 욕망의 공간을 나타내기에 파란 빛으로 채워진 수족관이 상징적이라고 생각되었다. (중략)현실의 환경을 살아가면서 동시에 논리의 구조로 만들어진 가상의 환경을 함께 살아가고 있는 현 시대의 모습을 투영하는데 목적이 있다. 합리화된 구조로 이루어졌지만 가상의 구조가 가지고 있는 모순적인 현실을 회화에 담고자 한다. ……실제로 경험한 장소와 경험하지 않은 공간이 연결되어 경계가 모호해지고 복잡하게 뒤엉키는 모습을 표현하고자 한다."
- 작가 김효숙 작업 노트 중에 -
적정 거리를 둔 편집된 욕망
작가 김효숙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과 사고들 그리고 공간을 이동하며 기록하고 모은 여러 이미지들을 집적시켜 페인팅 작업을 한다. 2008년~2010년에 보여진 작품 안에 도시의 형상은 채 완공되지 않은 건물의 구조물과 같은 파편들이 픽셀처럼 정리되어 뭉쳐져 있다. 개개의 형상들이 모아져 큰 흐름을 만들어 빠르게 변화하며 완성되어질 것 같은 건물과 도시의 모습, 그러나 그보다 더 빠르게 버려지고 황폐화되어지는 공간들과 그 안의 편린들이 작가에 의해 한 화면 안에 빼곡히 서술된다. 보아왔던 것, 경험된 과거와 현재, 두서없이 쏟아지는 사건들과 이미지들은 작가의 시․공간을 뒤섞는 초월적 조형 의지와 기계적인 욕망에 의해 응집되고 구축되고 있다. 2011년도부터 시작된 작업 안에 도시 모습은 좀 더 유기적인 형태의 밀도 높은 단위들로 변모하는 듯 보이고, 2015년 이후 '파란 방'(여행자들과 가상수족관) 시리즈들은 비현실적 환타지가 더해진 환경이 설정되어 시선이 이동된다.
부유하는 도시의 모습이나 가상수족관의 파란 방 시리즈 모두 작가 시선의 이동일 뿐 맥락은 동일하게 이어지고 있다. 현실에서 보여지는 것들, 현실에서는 보기 힘들거나 보길 희망하는 것들, (인간의 욕망으로)잘 보여지기 위해 감추어져 있는 것들을 모두 타래처럼 뭉쳐 제시하고 있다. 이는 시각예술창작자로서의 기계적인 욕망에서 비롯된 행위로 해석되어질 수 있다. 이렇게 편집된 욕망은 그것이 조합되기 전 철저히 구분․해체․재조합한 작업의 과정을 모두 여실히 함유한 채 재구축된 가상공간의 낯선 분위기와 흐름을 풍기며 작가 김효숙만의 색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창백하고 건조한 도시의 가상적 얼굴로, 환상적인 가상적 인공수족관의 공간으로 재현되는데 억지스러운 인위적 (욕망의)접속과 접합이라기 보다 잘 버무려지고 섞어 떠 낸 근사한 마블링의 단면처럼 보인다. 치유되기 힘든 상처와 아픔, 좀처럼 채울 수 없는 결핍과 부족, 혹은 대상에서 기인한 주체를 향한 욕망은 분명 아닌 듯 보인다. 시각예술창작자로서의 예민하게 체화된 경험과 시각적 재현의 욕구에서 촉발된 적정거리를 둔 작가 김효숙의 내재된 욕망의 발현인 것이다.
수집된 욕망이 자유로이 부유하는 가상 공간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의 작품 <천공의 성 라퓨타天空の城ラピュタ>에 라퓨타는 누구에게는 마음깊이 품고 있는 꿈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보석들이 숨겨져 있어 부를 축적해 줄 자원의 땅이었으며, 어떤이에게는 권력욕을 채워줄 세계를 지배하기 위한 전략적으로 정복해야하는 땅이었다. 실제 존재하는지조차 검증이 안된 천공의 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실제로 있다고 믿는 이들에게 각자의 꿈을 실현시켜 줄 욕망들이 투영된 일종의 보물섬이었다. 결국 그 곳을 소유한 자는 꿈꾸는 자의 것이었다.
작가 김효숙의 작품들에서 반복해서 보여지는 시각적 형식의 맥락은 부유浮遊에 있다. 땅에 기반을 두지 않은 채, 한 곳에 정착하지 않은 채 떠다니는 구축물들은 기반이 현실에 있지 않음을 분명하게 입증하고 있다. 작가에 의해 재구조화된 낯선 형체들은 각각 다른 프레임에서 각기 다른 형상들로 부유하고 있다. 거대한 몸체는 비현실적임을 시사하지만 구성하고 있는 픽셀형태들과 얽혀있는 가는 선으로 보이는 최소단위의 세포들은 모두 현실적이다. 천공에 떠 있는 라퓨타이지만 결국 그것을 지탱하고 끌고 있는 것은 자연의 나무(뿌리)인 것처럼, 작가 김효숙의 작업 속 서로를 단단하게 엮고 있는 요소들은 모두 현실적 형상들이다. 작가의 과거 작업들에서는 파편들이 집약적으로 응축된 거대한 흐름 속에서도 속속들이 내재한 인간의 형상들이 숨을 쉬며 현실과 연결시켜주었다. 작품 속 얽히고설켜있는 구조물들은 작가에 의해 완벽히 제어되고 연출되어 재현된 가상의 공간이지만, 근래 작업에서는 작가의 조형적 언어로서 현실을 잇는 혈관과 같은 연결고리가 보인다. 좀 더 유연해진 부유하고 있는 편집된 욕망이 혈관처럼 유기적으로 얽혀 현실과 가상을 밀도 있게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다.
작가 김효숙의 시각적 편린들을 수집하고자 하는 욕구와 자신의 조형적 세계의 한 프레임안에 모두 조합하여 구축하려는 욕망은 앞으로도 시선을 옮기며 다양한 모습으로 표출될 듯 아니 흐를 듯 보인다. 그의 욕망은 빼곡히 채워지는 파편화된 현실적 이미지들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스스로 지속되기 위한 생산을 욕망하는 내재적 공간이 비워져 있는 한, 끊임없이 수많은 것들이 채움과 비움을 반복할 것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