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화폐의혼인동맹

 

송진협 (미술 평론)

 

훈민정음 해례본이 낡아간다. 간송 전형필의 사망 이후 이 책을 목숨인양 품에 안고 피난 갈 사람은 이제 더는 없다. 자본가들은 앞으로 이 책의 물리적 자산가치를 어떻게 보존해야만 할 것인가? 지류 문화재의 체계적 보존관리를 위해 필요한 예산은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어서, 원본의 환금적 가치를 매년 감소시키기 마련이다. 자산가치 보존을 위한 기존의 아이디어란 고작 이를 디지털 이미지 파일로 변환하여 하드디스크 등에 보관하고, 그 파일로 한정판 영인본으로 발간하는 수준이었다. 실물과 육안으로 구분되지 않는 정교한 영인본을 통해 원본의 가치가 일부 이전 되었으나, 이들 역시 낡아가는 종이 책이기에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었다고 할 수 없다. 이제 소장처인 간송미술관은 100개의  훈민정음 해례본NFT를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미 영인본 제작을 위해 생성되어 있던 디지털 이미지들이 NFT로 전환되어 공식 판매되는 것인데, 이는 미술 소유권의 근원적인 변화가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원본이 상실될 경우 이 국보 자산의 가치는 일개 복사본에 불과한 NFT로 전이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의 한 스케치 작품에 대한 NFT가 원본 작품을 훼손할 권리와 함께 옥션에 등재되어 논란이 되었다. 이는 원본이 부재할 때 NFT가 실질적이고 완전한 원본의 지위를 갖게 됨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심지어 최근에는 한 뱅크시(Banksy) 프린트 소장가가 NFT 가치를 격상시키기 위해 해당 원본 작품을 일부러 파괴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기까지 했을 정도이다. 물론 이처럼 원본이 사라진 경우 다른 비-NFT 디지털 카피들 역시 새로운 원본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NFT는 블록체인이라는 공증을 통해 다른 비-NFT 디지털 카피들에 대해 압도적인 신용 우위를 가지게 된다. 또한 추가 수량 유입을 원천 차단함으로써 어떤 경우에도 그들 고유의 1/100 가치를 보존할 수 있다. 원본의 최종적이고 완전한 소실 이후 이 NFT는 현실 세계에 수많은 카피라이트를 투사해내는 새로운 디지털 오너로서 등극할 것이다.

 

지구가 낡아간다. 지구의 물리적 현존을 존재론적 기반으로 하는 전지구적 자본을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 아무리 생산성이 뛰어난 공장을 세운다고 한들 캘리포니아가 궤멸적 산불로 매년 위협받는다면 테슬라 기업의 자산은 천문학적인 손실을 볼 수 있다. 공장을 텍사스로 이전한다고 해도 여전히 지구의 물리적 상황에 의지해야 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는다. 때문에 투자자들은 테슬라의 자산 가치를 이제 화성으로 이전해야 할 상황에 처하였다. 그러나 과연 어떻게? 무엇보다도 화성의 지리적 배타성이 요구된다. 금성, 수성  등 수없이 가능해지는 플라넷 비(Planet B)들의 연쇄적 도전으로부터 화성의 가치는 대체 불가능한(non-fungible) 것으로 공증받아야만 한다. 또한 화성으로 손실 없이 옮겨진 자본은 화성에 안전하게 보존되는 수준을 넘어, 여전히 잔존하고 있을 지구의 자산을 지배할 수 있어야만 한다. 금본위 화폐 제도, 미국 달러 체계로는 도무지 이 우주적 자산 이동을 수행해낼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허물어져 가는 지구별의 어느 한 허약한 종이 책에 담지 되었던 훈민정음의 문화/자본적 가치가, 어느 날 테슬라의 시가총액 일부가 되어 화성 NFT재산으로 등재될지도 모르는 일인 것이다. 훈민정음의 카피라이트가 화성 NFT로부터 승인되어 오는 우주적 거래를 이제 지금 여기서 준비해야 하는 이유이다.

 

가상화폐와 결합한 NFT는 탈국가적/탈지구적 시대를 맞아 예술품과 투자자 모두의 자산가치를 보존하고 이전하는 가장 탁월한 도구가 되었다. 이는 금보다도 더 안정적이며, 미국 달러보다도 통화량 리스크 부담이 덜한, 탁월한 예술-화폐이다. 이제 NFT는 순수예술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화폐 도안(currency design)으로서 민팅(minting) 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어설프게 새겨졌던 로마 금화의 황제 초상은, 기술 복제시대를 맞아 달러화 지폐에 정교하게 그려진 미국 대통령 초상화로 진일보한 바 있다. 오늘날 전지구적 자본의 상속자로서 가상화폐들은 이제 그 지위에 걸맞은 새로운 예술적 초상화를 당연하게 요구하고 있다. 음악이 울리고 모션 그래픽으로 치장된 NFT들이 이 새로운 화폐-예술의 시대를 찬양할 것이다. 이 젊은 예술-화폐들은 그 어떤 자연재해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불멸의 신체로서 영예로운 승계를 마치고 존재론적 새 행성에 군림하게 될 것이다. 부르봉 왕조와 메디치 가문이 그러하였듯이, 실재와 가상, 지구와 화성, 예술과 화폐의 불가능해 보이던 혈연은 이미 성공적으로 체결되었다. 이제 누가 이 우주적 혼인 비행에 먼저 올라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