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디의유혹

 

송진협 (미술 평론)

 

정선주 작가의 작품 세계는 다양한 색깔과 모양의 캔디를 크게 확대한 입체 연작이 주를 이룬다. 화면을 압도하는 이 거대한 캔디들은 강렬한 색으로 치장되어 있을 뿐 아니라 각종 문양과 슬로건을 더해 한층 장식적인 모습이다. 푼돈으로 사고파는 식료품 가게 캔디들이 미술 갤러리에 한껏 멋을 낸 채 등장한 것이다. 이 현란한 캔디들은 거대한 크기로 평면 캔버스를 가득 메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손에 잡힐 듯 튀어나오는 입체의 형상으로 관객을 유혹한다. 갤러리는 이제 전방위적으로 폭주하는 싸구려 캔디들의 혈당으로 뜨겁게 달구어지고 있다.

 

정선주 작가는 오늘날 현대인들의 퍼스펙티브가 좁은 이유를 "획일화되고 익숙한 이미지에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노출되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전지구적 상품자본주의는 경제적 논리에 근간한 몇 가지 시각적 조합을 채택하고, 미디어는 이를 대중소비사회의 시각문화에 홍수처럼 쏟아낸다. 대중들은 수많은 캔디 중 자신이 좋아하는 색과 맛을 주체적으로 결정하여 소비했다고 착각하지만, 이미 그것들은 상품자본주의시대 가장 경제적인 조합 중 어느 하나일 뿐이다. 대중들은 스스로의 개성과 주체성을 보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이 모든 것이 미디어가 전달한 시각적 질서의 선택항이기에 근본적으로는 소비행위이다. 자본주의가 생성하고 미디어가 전파한 시각질서는 상품의 생산과 소비뿐만 아니라 시각문화의 표준, 예술판단의 기준으로 남아 현대대중사회를 장악한다. 오늘날 미술계의 창조성과 미술 대중의 취향이라는 것이 사실상 미디어가 단물 빨고 버린 싸구려 포장지 수준의 것임을 정선주의 캔디들이 구체적으로 증언하고 있다.

 

갤러리를 가득 채운 이 허세 가득한 캔디들은 달콤하고 유혹적인 자본주의적 선택항들로 가득 차 있다. 파리 패션계를 한철 뒤흔들었던 점박이 문양이, 런던 디자이너의 해골형상이, 뉴욕 힙스터들의 슬로건이 이제 화학염료 및 정제설탕과 범벅이 된다. 대형 전광판에 투사된 캔디 광고의 현란한 이미지는 대중의 눈을 한 번에 사로잡고 급기야 그들의 혀와 눈을 멀게 할 것이다.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달콤하고 정제된 시각적 선택항에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노출된 현대 대중들은 이제 그저 예측 가능한 취향과 편협한 판단력을 지닐 뿐이다. 심지어 가장 창조적이어야 할 갤러리 곳곳에 조차 달콤한 캔디의 유혹이 서서히 장악해 나간다. 푸드 아울렛을 떠돌다 유통기간이 지나버린 실존 상품의 폐기 이후에도, 저 달콤한 캔디들의 매력적인 색은 여전히 유효한 시각적 잔상으로 우리를 압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