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 JONGHYUN : KKOKDU: SEOUL

15 September - 22 October 2022

우리 뿌리를 찾는 절제된 사진의 여정

 

홍은미 (충청남도 문화재 전문위원)

 

남종현 작가는 우리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역사를, 거대 담론이 아닌 작가 자신의 뿌리로부터 찾아 나섰다. 그 출발은 우리 곁에 오랜 시간을 담은 사물을 관찰하는 데서부터다. 광고 사진가로 주목받던 그가 그만의 사진예술 외연 확장에 중점을 두고 시작한 첫 작업은 '물상'이였다. 남종현 작가는 기계적이고 객관적인 기록의 산물인 사진에, 그의 시선과 감성을 녹여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작가이다.

그 중에서도 작가가 유독 조선시대의 기물에 주목하는 이유는 소박한 자연미, 단순하면서도 부드러운 형태미에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그의 작업과정을 따라 작품들을 살펴보면 비움과 고요, 더불어 절제가 내재되어 있음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 오랜 시간을 버티고 견디어온 사물의 본질에 접근하기 위해 노력하고 고민한 결과를, 작품으로 우리 앞에 보여주는 것이다. 맥락을 이해하고 기록하고자 하는 노력이 작품을 넘나들며 깃들어 있다. 우리가 기억하고 우리를 기억하는 전통 오브제를 새로운 풍경으로 보여주는 그의 작업방식은 사물의 본질에 좀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안내하는 친절한 해설서다. 옛 이야기를 결박하는 사진작업이지만 작가의 시선으로 변주되는 화면의 질서는 고루한 전통 미감을 어떻게 재해석하여 구체화 되는지를 엿보게 한다. 거꾸로 작가의 오랜 시간과도 조우하게 되는 도중의 즐거움은 덤이다.

 

기억의 시간 속에서 꼭두에 부여한 경계의 질서

남종현 작가가 요즘 집중하고 있는 오브제는 단연 꼭두이다. 꼭두를 정의하자면 평면 또는 입체적으로 채색된 인형이다. 그 인형은 사람의 형태나 동물의 형태를 띤다. 재질은 나무나 흙이 대다수다. 예부터 사람이 조종하여 움직이는 인형놀이나 인형극에 사용되는 것을 총칭하여 '꼭두각시'라고 하는데 이를 줄여서 '꼭두'라고 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꼭두는 상여 장식물을 일컫는다. 남종현 작가가 오롯이 응시하고 있는 오브제 역시 상여를 장식하는 꼭두다.

 꼭두는 목우木偶, 목용木俑, 토우土偶, 토용土俑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러한 이름이 붙여진 배경을 알려면 꼭두가 무엇을 뜻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실제 인간과 유사하지만, 가장假裝된 인격체이고 또 귀신과 통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역사상 우리에게 첫 선을 보인 꼭두는, 신라와 가야 시대 부장품을 통해서이다. 부장품으로 들어간 꼭두는 사악하고 나쁜 것들로부터 침입을 막기 위해 무기를 들고 있거나 다소 위협적인 표정을 하고 있다. 상여에 장식한 여러 형태 꼭두는 인물형 꼭두를 비롯해 말, 해태, 소, 호랑이와 함께 등장하거나 또 봉황, 용, 닭 등 상서로운 동물과 연꽃 매화 등의 꽃으로 화려하게 상여를 수놓고 있다.

 꼭두의 기능과 역할을 구분하자면 불화에 등장하는 직부사자와 같은 길 안내자 꼭두, 벽사의 역할을 담당하는 수호 꼭두, 또 슬픔을 걷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재인 꼭두이다. 이러한 꼭두에는 죽음 이후 세계에서 좀더 평온하고 안락한 삶을 누리기를 희망하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바람이 반영된 결과물이며 이승과 저승 사이의 중간자이고,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 극락세계로의 환생과 새로운 삶에 대한 축원이 깃들어 있다.

사회적 계층에 따라, 또 망자의 경제력에 따라 상여에 장엄하는 꼭두의 내용과 작품 수준이 다르다. 하지만 작가는 이를 염두에 두지 않고 꼭두 그들에게 새로운 화면의 질서를 부여했다. 상여를 장식했던 봉황이나 극락조, 학의 모습을, 전체 이미지로 보여주기보다 작가의 창조적 영감이 작용하여 독특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마치 관객인 내 앞으로 날아오듯이 새의 날개와 몸체를 사선으로 배치하여, 다른 세계 다른 영역으로 진입하려 비상하는 듯한 화면을 구성하고 있다. 이렇듯 사물이 갖는 본래의 의미를 중요하게 포착해,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또렷하게 보여준다. 영수(동물)의 등에 올라타 악기를 연주하는 꼭두, 거꾸로 서서 연희를 하는 재인 꼭두를 통해서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을 달래주고 떠나는 망자의 길이 외롭지 않기를 바라는 남은 사람들의 염원이 그의 사진에 깃들어 있다.

 

꼭두, 삶과 죽음의 경계를 초월한 모두의 축원

죽음은 죽음 이편 저편의 사람 모두에게 두려움을 준다. 죽음을 터부(Taboo, 禁忌)시 여겼던 동양의 정서에 맞게 우리 조상들 역시 불안과 두려움,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꼭두를 활용했다.

그러나 어쩌면 이 정서가 현재의 잘못된 인식과 편견이 불러온 해석일지도 모를 일이다. 오래 전 우리네 상갓집을 살펴 보면 한 곳에선 망자를 위로하는 곡(哭)을 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 곳에서는 기름진 음식에 웃음과 놀이문화가 공존하는 것이 우리의 장례문화였기 때문이다. 이로써 우리 민족에게 죽음은 해학이요 희극이며 비극인 샘이다. 천상병 시인은 죽음을 귀천(歸天)이라 하지 않았던가. 덧없는 삶, 유한한 삶에 대한 필연적 죽음 메멘토모리(memento mori)에 친숙함을 느끼던 바로크시대의 정서와는 확연히 다름을 알 수 있다. 이세상 소풍을 마치고 하늘로 돌아가는 여정이 헤어짐의 아쉬움이지 죽음의 공포는 아닐 것이다. 불교경전 『유교경』에서 말하는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의 이치를 온전히 받아들인 우리 민족 이기에 이쯤에서 죽음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인간의 형상으로 죽은 이의 넋을 위로해주고, 또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자 만들어진 꼭두에 대한 고정관념을 질책하듯 작가 남종현은 자신만의 시선과 해석으로 담아내고 있는데, 작가의 해석은 목각인형으로 만들어진 '한국의 천사'이다.

죽음에 대해 그토록 비극미를 선사하는 서양에서 '천사'는 수태고지의 성스러운 메신저로 대표된다. 아이러니다. 남종현 작가의 시선에 의해 재해석된 한국의 천사 '꼭두'는 이미 이승에서 떠났으나, 아직 저승에 가지 않은 망자의 동반자요 안내자며 그저 친구와 같은 존재다. 가족을 잃은 슬픔이 하늘을 다 덮어버릴 정도로 어둡지만, 꼭두의 표정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초월한 엄숙미를 넘어서 아름답고, 때로는 동반자로써의 든든함과 동행의 즐거움을 선사하니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이러듯 서로 다른 의미와 느낌으로 해석된 두 천사는 이세상과 저 세상의 경계에서 중간자의 역할을 수행함에 있어 동일한 존재임은 틀림 없다.

우리는 남종현의 사진작업에서 전통을 넘어선 문화체계와 의미체계를 읽을 수 있다. 남종현 사진에서 엿보는 이미지 코드는 단순한 재현을 뛰어넘어 정면성과 측면성, 그리고 서로 바라보기를 가능하게 한다. 오랜 시간이 쌓여 '저마다의 힘을 갖고 있는 사물'에 대한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코드가 남종현의 사진에 내장되어 있다.

 

우리 문화코드, 시각문법을 완성하는 한지라는 매개

꼭두를 촬영하며 발견한 문화코드의 가치는 국내외 미술계뿐만 아니라 남종현 작가의 예술세계를 좀 더 단단하게 다져나갈 수 있도록 한 고마운 선물이다. 우리는 그가 찾아낸 새로운 시각언어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신의 예술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집중한 우리의 전통문화는 물론 그 전통문화의 대표 이미지를 찾아 오랜 시간을 머물며 탐닉한 고유한 아름다움의 체계, 그가 완성한 우리 전통의 시각문법이다. 그 문법의 바탕으로 채택한 것이 사진이며, 그가 전통문화를 재해석하여 찾고 만들어낸 시각적 이미지들은 우리 문화의 새로운 표상이 되고 있다.

한가지 더 살필 것이 있다면 사진 작업의 결과물을 한지로 인화한 그의 방식이 그만의 시각문법을 완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유한 오브제를 찾고 기록하고 표현하는 지난한 과정의 끝에서 다시 고유한 바탕이 태어난다. 사진이 담길 종착지로서 한지 역시 작가의 내면을 작품에 옮기는 안성맞춤 표현 방식이다. 이는 남종현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창조적 미학이다. 우리의 미적 정체성과 혼융되어 있으므로.

 

오래된 시간 속으로 스미어 전통의 아름다움을 즐길 때

모든 예술가는 아름다움을 지향한다. 예술로서의 사진을 말하는 사진작가 남종현은 오늘도 카메라 렌즈를 통해 발견한 우리 기억의 시간 속 사물의 본질, 즉 전통의 아름다움을 향해 접근해가고 있다.

러스킨은 말했다.

"성취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지만 즐기는 것은 모두가 할 수 있다."

우리 모두 남종현의 사진을 보면서 기꺼이 그가 즐겼던 아름다운 사물과 그가 보듬고 있는 오래된 시간 속으로 스며들어 즐길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