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 없는 예술
고연수 (미술 평론)
마티에르 : 녹여 추출한 선線
가느다란 형형색색의 선들이 씨줄과 날줄로 엮어져 때론 촘촘하게 때론 듬성듬성하게 교차되고 엉키며 특정한 형상을 이룬다. 캔버스 안에서 혹은 프레임을 넘어선 전시장 벽면 전반에 펼쳐져 설치된 조원강 작가의 회화 작품이다. 다만 조형적 형상을 이루는 기본 단위의 수많은 선들은 2차 평면에 찍히거나 발려 그려진 것이 아닌 3D 펜으로 그려진 입체적인 선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작업이다.
공간을 포함한 선들의 질감이 또렷하게 살아있는 2차 평면의 회화 작품 속 인물과 동물과 사물의 형상은 작가의 의도대로 편재해 있으며 개별적으로나 뭉텅이로도 연출되어 구성되고 있다. 특이하거나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잔잔한 풍경의 단면이지만, 중심이 되는 대상들의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뒷배경은 묘사되지 않고 생략되어 궁금증을 남긴다. 거의 납작하게 평면에 닿아있으나 평면으로부터 미세한 공간을 두고 그려진 엮이고 짜내져 엉겨진 입체적 선들은 빛을 받아 미세한 그림자를 또한 내포하고 있어 3차원의 마티에르와 볼륨감을 더하며 각각의 형상들을 더욱 풍성하게 한다.
시선의 전복, 상실된 중심
"미술관에 작품 보러온 사람들을 보면 정작 작품은 거의 보지 않고 사진만 찍고 갑니다. 촬영금지 공간에서도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고 있어요. 보고 찍고 가는데, 휴대전화가 등장한 이후엔 속도가 더 빨라진 것 같아요. 사람들이 작품을 대하는 태도와 심리가 궁금하고 재미있어요. 과연 예술이란 무엇인가... 생각이 들어요."
- 조원강 작가 인터뷰 내용 중 -
조원강 작가의 2017~2020년 사이 제작한 유화 작품들 <Ways of seeing> 연작들은 뉴욕에 있는 미술관 내의 풍경을 담은 것이다. 유명한 작품들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작품을 관람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긴 하지만 작품 속 위치한 대상들과 공간의 분위기는 어쩐지 조금은 이질적으로 직감된다. 예컨대 무심하게 지나가거나 사진 찍는 것에 집중한 사람들 사이에 우두커니 벤치에 앉아있는 조지 시갈의 인체 형상은 인파 속에서 무언가를 골똘히 사색하는 듯 진지한 표정이며, 우뚝 솟은 거칠고 날카로운 자코메티의 걸어가는 인체 형상은 창백하게 사람들 사이로 배회하는 듯 보인다. 오래되어 훼손된 조각상들의 군집 사이 바닥에 앉아 드로잉을 하는 여성과 두상 조각 바로 앞에서 뭔가를 적고 그리는 남성의 모습에선 작품들이 관객에게 뭔가를 이야기하는 듯 긴밀하게 소통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사람들 사이에 상큼하게 떠 있는 제프 쿤스의 풍선 개의 작품은 작가가 그간 많이 제작해왔던 평면화에서의 개의 모습처럼 사람들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있어도 반짝이는 또렷한 주인공이다. 조원강 작가의 작품 속에서 작품을 관람하는 관객은 때론 작품들의 배경으로 간주될 정도로 흐릿하거나 그에 비해 명작들은 확연하게 부각되어 성큼 실제 눈앞에 놓여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도록 과감하게 위치시킨, 통상적인 시선을 뒤엎은 유희가 있는 조원강 작가의 시선이다.
작품 속 관객과 작품과의-당연하다고 생각되는-관계를 치환시키고, 의도적으로 뒤엉키게 한 대상들 간의 관계와 그 간극은 그가 고안한 일종의 원근법으로 보인다. 보는 이의 중심으로 정돈된 전통적인 원근법이 아닌 중심을 흩트려 놓고 전복시키고 있다. 그 이후 3D펜으로 제작한 작업은 소실점 없이 나열되고 중첩되고 가변적으로까지 펼쳐지고 있다. 그래서 작품 속 인물과 사물은 옴니버스식으로 모여 전체를 이루기도 하고 각각 떨어져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도 하며 전혀 새로운 이야기들이 생성되기도 한다.
그의 유화 작품이 그가 설정한 원근법으로 작품 속 대상들이 관계를 설정하고 간극이 만들어졌다면 벽면상에서 3D 펜으로 그려 쌓아 올려 펼쳐놓은 작품에서의 대상들 간의 관계는 중심이나 서열은 아예 상실되어 보인다. 극적으로 주제를 부각하거나 서사를 만들지 않고 동일선상에 흐트러트려 분산시키고 관계를 재구성해 재현하는, 그가 바라본 다른 방식으로 보기인 것이다. 드가의 어린 무용수의 소녀상 작품을 올려다 바라보는 두 남성의 시선을 작품 뒤편의 시점에서 마주하게 한 그의 유화 작품은 조원강 작가만의 특유한 시선과 그만의 감각적 구도가 함축되고 응집된 것으로 보인다.
지적이고 우아한 설득
조원강 작가의 작품 명제인 'Ways of seeing'은 그의 작업 방식이자 그가 바라보고 선택하고 조형한 시선이며 부연 설명 없이도 오롯이 그의 시선을 공감하고 이해하는 데 무리는 없다. 그의 작업 <Ways of seeing>은 그가 바라본 시선에 대한 재현이기도 하지만 작품 속 사람들과 작품 간의 관계, 서로를 바라보는 방식이 녹아 있으며 여러 시선을 프레임 안에 담거나 프레임 밖에 펼쳐놓음으로 중심을 상쇄해버리고 오직 '보는 이'가 그곳에 있었음을 입증한다. 작품을 보러 미술관에 간 사람들이 작품을 보자마자 사진을 찍고 가는 것은 내가 그곳에 있었다는 기록을 남기기 위한 것이며, 그 사람들을 보며 사진을 찍고 다시 작업으로 재현한 작가는 또한 그 시공간에 작가 본인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과정이 아닐까. 이것을 작가는 다른 방식으로 보기로 설정해 열어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작업에 전반적으로 관통하는 '노스텔지아'의 아련한 정서는 결국 그가 본 시선이 우리에게도 설득력이 있는 이유일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고 작가의 시선으로 다듬어 다시 세상으로 내어놓는 시각예술은 소통하는 과정에서 많은 부연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시각적 산물을 두고 무엇을 의미하고 창작자의 의도가 무엇인지에 대한 다른 소통방식으로 더 많은 설명이 필요하다면 과연 시각예술일까.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만질 수 있는 물질로 만들어 소통을 꾀하거나 인류의 역사상 이의 없이 보편적으로 합의해 온 관습과 시선에 대해 작가의 감각으로 다시 물어 낯설지만 깊게 고찰하게 하는 것은 예술이 예술이기에 가능한 것이고 예술이 예술이어야 하는 역할이었다. 최소한의 단서만 남긴 채 모든 걸 침묵으로 일관해 과잉 해석과 이야기들이 붙는 작품이 모두 좋은 작품으로 보긴 어려울 것이고, 그리고 실제 역사상 중요한 작품들은 우리를 어떻게든 설득해온 것도 사실이다.
예술의 매혹적인 기능 중 강력한 것은 창작자가 본인의 작품을 통해 넌지시 건넨 메시지에 관객은 그 간극을 채우고 해답을 도출해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일 것이다. 이러한 우아한 소통의 과정은 예술을 빛나게 하는 중요한 요건이기도 할 것이다. 작품의 스토리는 오롯이 관객이 몫이 아닌 창작자의 계획과 권한이어야 하고 창작자만의 고유하고 특유한 시선을 우리가 이해하고 온전히 받아들여졌을 때 그 이후 비로소 각자 개인의 경험과 지식과 감성이 발아하며 작품은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조원강 작가의 작업과 작품이 지닌 가치, 즉 예술성은 더 명확하게 와 닿는다. 무엇을 의미하는지 재량껏 해석하라는 창작자의 거친 무심함이 아닌 "예술이 무엇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작가의 또 다른 보기의 방식으로 부드럽고 섬세하게 지적이고 우아하게 우리를 설득한다는 점이다. 시각적으로 광활하게 펼쳐져 전개된 직관되는 작품의 물리적 형상은 시각적으로도 새롭고 시원하나 동시에 은유적으로 예술에 대한 소고를 묻는 그의 작품은, 섬세하게 우리를 사유하게 한다.
손맛에서 추상되는 예술가의 시선
조원강 작가의 이번 전시에서의 작품들을 위시한 과거의 작품들을 소환해보면, 그림을 무척 잘 그리는 작가이다. 어릴 적부터 그림을 그려온 창작자에게 새삼 외람된 표현이겠지만 차곡차곡 본인의 작업을 묵묵하게 진화시켜온 작가의 작품은 대체 불가한 그만의 고유하고 강한 설득력이기에 다른 수사 어구로 에둘러 첨언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특히 근래 창작자의 상념을 매체의 물성과 함께 기발하게 활용한 작품들은 많이 생산되고 있지만, 타진되지 않는 내실에 표피로만 눈과 마음을 구슬리는 작품들이-생성과 소멸조차 빨라 허무함이-부유하는 상황은 예술에 대한 갈증을 더 깊게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 조원강 작가의 작품은 묵직하게 반가운 작품이다. 그의 작업에 내재된 또 한 맥락의 'Beyond'는 화폭에서 벽으로의 위치 변화와 물리적 크기를 확장한 의미도 포함하겠으나 작품과 관객과 작가가 위치한 지점과 관계에서의 프레임을 벗겨내려는 의도로도 보인다. 시각예술에 있어 아직은 희소한 그의 새로운 매체인 도구이기에 더 수월하게 실현된 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재료와 작가의 관계가 긴밀하고 다루는 데 능숙하다고 해서-전통적인 의미에서의-그 매체는 곧 그 작가라는 프레임에 고착될 것 같지도 않다. 관계와 프레임으로부터 넘어서 확장되고 재구성하는 그의 시선과 상념을 발현시켜 재현해준 신통한 재료이긴 하나 작가는 아마도 또 다른 도구와 재료를 물색할 듯싶다. 어쩌면 세상에 존재하는 물성과 향후 지금으로선 상상치도 못할 새로운 물성의 대상들이 그의 손맛으로 예상치 못할 가능성을 가지고 생산될 오브제일 듯싶다. 이미 많은 매체를 다루면서도 여전히 작가는 손맛에 대해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언급을 하는 것으로 보아 그의 진한 손맛으로 가공될 작업이 계속 궁금할 수밖에 없다.
흔하게 보지 못한 재료나 매체이기에 좀 더 특별하다던가 신박함의 정도를 넘어서, 조원강 작가가 세상을 바라본 시선의 결을 짐작지 못한 물질로 구현해 우리에게 또 다른 예술적 시선을 되묻고 제안할 것이라는 기대가 품어진다. 그러기에 조원강 작가의 작업에 있어 그의 시선을 재현시켜주는 물리적 매체에 대한 관심보다는 그가 향하는 시선에 더욱 집중하고 싶다. 시각예술에 있어 생산될 것이 과연 더 있을까라는 마음을 기우로 바꿔주며 안심시켜 주는 건 작가의 명료하지만 힘 있는 한 마디와 그에 따른 행보일 것이다.
"예술은 변명하지 않습니다. 영감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작업을 하다 보면 결국 영감은 스스로 찾아오게 되어 있어요."
- 조원강 작가 인터뷰 내용 중 -
"미래의 미술가는 여전히 붓과 물감 혹은 필름에 정통할 수도 있지만 또한 건축가, 지리학자, 연설가, 정치가 또는 과학자의 기술을 이용할 수도 있다. 한 사람을 미술가로 간주하는 기준은 그가 예술의 참된 역사적 사명, 즉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감각적으로 더 잘 이해시키는 사명에 관심이 있느냐다. 미래의 미술가는 예술이 항상 전념해왔던 가치들을 증진하는 사건의 기회를 창조할 것이고, 그 범주에는 탑, 분화구, 만찬, 혹은 유치원이 포함될 수 있다. 앞으로 수십 년 동안 많은 미술가들이 전통적인 미적 대상을 생산하는 대신 예술의 기본적인 사명을 향해 직접 돌진한다 해도 예술의 알맹이가 사라졌다고 놀라거나 슬퍼하지 말라. 예술은 여전히 우리가 세계를 경험하는 방식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기본적인 사명에 매진할 테니."
- 『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