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 HYELIM : YELLOW KID #5: SEOUL

17 August - 16 September 2023

옐로우키드: 놀이, 서사혹은새로운존재론으로서의시각예술

 

송진협(미술 비평)

 

그림을 그리는 작가는 많지만, 그림의 존재론을 그리는 작가는 많지 않다. 그러기에 차혜림의 작품은 캔버스 너머의 적극적 여백, 언어 이상의 초월적 서사, 연극적 참여로서의 관람을 요구하는 확연히 새로운 시도가 된다. 차혜림의 개인전 <<옐로우 키드 #5(Yellow Kid #5)>>에서 관객들은 구태의연한 원근법적 응시를 내려놓아야 할 것이다. 이 작품들이 열어젖힌 전시 공간은 은유와 해석의 만찬이거나, 시공과 주객이 얽혀 휘몰아치는 장려한 연극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차혜림은 캔버스 너머의 적극적 여백을 일깨운다. 그간 미술작품들의 서사는 캔버스 각각 마다 캡슐처럼 분리된 뒤 전시장에 산발적으로 배열되어 독립적으로 감상되어 왔다. 전시 <<옐로우 키드>>는 작품들이 캔버스 프레임을 넘어 보다 크고 풍성한 이야기를 만들고자 하는 원대한 기획을 잘 드러낸다. 19세기 말 20세기 초를 풍미한 신문 만화 <옐로우 키드>는 만화 형식의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온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부터 만화는 드디어 개별적으로 구획된 사각형 장면들의 연쇄로 그려짐으로써, 시공간이 각 장면마다 서로 분리되기 시작한다. 단 이 서로 분리된 장면들은 만화 칸 사이에 자리한 좁은 여백의 띠를 매개로 서로 이어지게 된다. 빈 여백이 되려 꽉 찬 프레임들의 스토리텔링을 이어주는 장치가 된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차혜림의 사각 캔버스 프레임들은 이 신문 만화의 형식을 빌어 3차원에 흩뿌려진 개별 만화 칸들의 연쇄를 흉내 내고 있다. 작품의 프레임과 프레임 사이에 놓인 널찍한 갤러리 벽을 마치 만화 컷 사이의 좁은 빈 간극처럼 해석한 것이다. 텅 비고 말 없는 이 갤러리의 공간들은 캔버스 프레임들을 서로 잡아 당겨 끌어들임으로써, 보다 입체적이고 유기적인 말풍선 혹은 예술적 서사들을 창발해 낼 것이다.

 

차혜림은 언어 이상의 초월적 서사를 일깨운다. 이 전시에 작품들은 만화 컷들처럼 이어져 전시라는 보다 확장된 형식적 서사에 수렴되지만, 정작 캔버스 내부의 인물과 장면은 일관된 내용적 서사를 거부한다. 차라리 초월하는 것이다. 작품 내의 인물과 사물들은 모두 모호한 회화적 공간에 부주의하게 얹혀져 있다. 대부분의 이미지들은 실제 인물 사진과 상상적 배경이 조합된 파편적 잔영들이다. 이들에 대한 사유는 차라리 상상에 가까우며, 문맥의 층위는 뒤틀리고, 맥락은 서로 다르게 중첩되어 기록된다. 자기 자신 외에는 그 어떤 방식으로도 나눌 수 없는 수학의 소수, 혹은 일상적 문법 요소를 상당수 결여한 수어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들 장면의 이야기들은 스스로의 분명한 내적 규칙을 지니고 있으나, 쉽게 분석되거나 이해되지 않는다. 존재하지만 쉽게 양상을 드러내지 않는, 우리의 해석과 이해를 간절히 갈구하며 부르지만 미끄러지는, 그럼에도 분명히 감지 가능한 이미지와 서사가 이곳에 가득히 떠다닌다.

 

차혜림은 연극적 참여로서의 관람을 요구한다. 때문에 관람은 서사이면서 놀이이면서 어쩌면 게임이 된다. 규칙은 의외로 단순하다. 흩뿌려진 개별 작품들과 작품들을 서로 이어 마치 한편의 만화 스토리텔링처럼 포괄적이면서도 입체적인 서사를 경험할 것. 또 개별 작품 각자에서는 활원하게 열린 초월적 은유와 해석을 마치 빈 말풍선처럼 스스로 채워가며 즐길 것. 관람객은 서로 도무지 이어질 것 같지 않는 두 프레임 사이의 막막하고 빈 공간을 채울 용기가 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작열하는 전시 조명 아래 프레임 사이의 빈 공간은 서사의 응축된 이음점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백색 절규가 될 것이다. 개별 화면으로서 작품들은 관람객들에게 오로지 스스로의 해석에 의해 조작되어야 하는 의미의 원점 혹은 게임 프롤로그가 될 것이다. 결국 그 어떤 서사로도 유기적으로 이어지지 않는 갤러리 벽의 광막한 빈 공간은 백색 노이즈가 되어 관람객들에게 인지적이면서도 생리적인 고통이 될 것이다. 또한 개별 캔버스 속의 광막한 무의미는 관람자의 개별 해석 혹은 조작에 따라 너무 쉽게 증폭되고 변이되는 디지털 게임 혹은 메타버스의 일부가 될 수도 있다.

 

몸으로 이 전시공간을 체험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감각-관람 패턴을 결코 쉽게 이해될 수 없을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차혜림은 우리에게 청각과민성 자폐 체험게임인 을 제시한다. 정상적인 인지과정과 달리 이 자폐증은 노이즈가 극도로 증폭되거나 적절히 필터링되지 않아 정작 필요한 청각 자극을 유의미하게 재구성할 수 없는 증상이다. 이 시뮬레이션 게임 화면에서 무분별하게 쏟아지는 노이즈는 상당히 공포스럽지만, 자폐를 겪는 이들의 인지생리적 고통을 즉각적으로 체험하기에는 너무나 훌륭한 수단이 된다. 물론 이 경우 게임 참여자는 순전히 스스로의 조작에 의지하여 이 상황을 홀로 제어해나가야만 한다. 결국 의미와 의미 사이의 광활한 무의미를 좁혀 전체 의미들을 관통하는 궁극적 서사를 이끌어내는 길. 의미 내부의 무의미를 주체적으로 조작하여 개별 주체만의 원형적 의미를 찾아가는 길. 이 화해 불가능해 보이는 두 길의 양자 얽힘을 작가는 이처럼 어렴풋하게 예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 전시는 회화에 대한 전시라기 보다는 회화의 존재론적 가능성에 대한 전시로 보아야 한다. 쉽사리 태어나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새로운 시각예술의 스토리텔링이 지금 여기서 플레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