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태 KOREA, 1969

Biography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어떤 매체를 활용할 것인지 매우 신중하게 결정한다. 때로 매체가 의도에 우선하게 되어 원래의 의도와는 다르게 읽혀질 가능성도 있으며 심지어 어리석게도 작품의 가치조차 폄하될 수도 있다. 물론 오독(誤讀)의 가능성은 매체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작품의 내용 등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나...때때로 오독(誤讀)은 작품이 가진 해석의 다양성을 풍부하게 하기도 한다.

 

회화, 즉 전적으로 수작업으로 만들어지는 그림은 오롯이 작가의 상상력의 결과이다. 그것이 실재사건에서 영감을 받았던 아니면 과거의 재해석이건 결과적으로 작가의 정신적 활동을 통한 예술적 창작, 다시 말해 예술적 허구(Fiction)인 것이다.

그러나 사진은 다르다. 사진은 분명한 증거이다. 사진은 사람들이, 또는 그 사건들이 일어났었음을 증명한다. 거기에는 옳고 그름도 없고 딱히 목적의식도 없다. 단지 그들이 그곳이 실재한다는 사실증명일 따름이다. 그에 따른 판단은 보는 사람의 몫일뿐이다.

 

혼합, 나의 작품은 사진과 그림의 혼합이다. 마치 영화에서 '사실에 근거함'이라는 문구가 주는 무게감이랄까 사진은 나의 작품에 그곳의 실재를 증거하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 덧씌워지는 회화적 공정들은 바로 그 공간에서 일어났을 법한 사건들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혼합은 "극화, 또는 각색(Dramatization/Adaptation)"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나는 가끔 처음부터 끝까지 그림만을 그리기도 한다.

 

장면, 그림과 사진의 혼합을 통해 만들어지는 작품속의 사건들은 현실과 초현실의 중간 어디쯤에서 일어난다. 어쩌면 그래서 나는 낮과 밤의 경계인 그런 시간들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다지 현실적이지는 않아 보이고 그렇다고 딱히 초현실적이라고 하기에도 그런 정도이다.(사실 이 시간들은 내게 있어 대단히 초현실적이며 비현실적이다.) 어쩌면 나의 작품 속의 이러한 현상들은 실제로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누가 알겠는가. 우리의 눈이 보는 것은 고작 가시광선의 영역 안에 있는 것들뿐인데…….

 

숭고, 우리의 삶은 저 광활한 시공간의 한 구석에서 벌어지는 아주 작은 하나의 섬광과도 같은 것이다. 게다가 아주 짧디 짧아서 아! 하는 외마디 탄식조차 채 끝나기도 전에 사라지고 마는 아주 우연한 사건이다. 역설적이게도 바로 이 우연한 찰나적 일회성에 삶의 가치가 있다. 이 찰나적 일회성의 처절한 소중함은 무한한 시공간에 대비하여 숭고라는 감정으로 나타난다. 이 숭고한 섬광은 거칠게 불타오르기도 하고 어떤 것은 가만히 사라지기도 하며 또 어떤 것은 꽤 오래가기도 하는 등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은 다 우연일 따름이다.

 

푼크툼(punctum), 나는 어린 시절 어느 잡지 속 한 사진작품에 매료된 적이 있다. 높은 구름과 나무들 사이로 걸어가는 지게를 진 한 농부를 역광으로 찍은 그 사진은 어린 나의 가슴을 날카롭게 꿰뚫고 지나가 버렸다. 어쩌면 나의 이 모든 작업은 이때 시작된 것일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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